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고르바초프 (문단 편집) ==== 북한 ==== 당연히 평가가 좋을 리가 없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때문에 동유럽 공산 국가들은 물론 소련까지 무너지면서 사회주의 형제국들로부터의 원조가 끊겼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결국 1990년대에 이르러 [[고난의 행군]]이라는 궤멸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특히 냉전 시기 내내 북한이 공들여 온 중국과 소련 사이 줄타기 외교 전략이 완전히 무너져 버려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북한의 "세계력사" 교과서만 봐도 북한은 고르바초프를 '''현대수정주의자''', '''사회주의배신자'''라는 표현을 동원하여 신랄하게 까고 있다. 대내적으로 다당제 도입, 시장경제 도입, 사상문화 분야에서의 자유화, 군대의 비정치화·비사상화를 추진하여 소련을 해체로 이끌었고, 이러한 정책이 대외적으로도 영향을 끼쳐 동유럽 공산 정권이 붕괴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즉, 북한 입장에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자체가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며, 미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포기한 것이며 바로 그랬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해체되었다고 보는 것. 북한은 1956년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운동을 전개한 시점부터, 흐루쇼프에 대해 수정주의 반동이라는 입장에서 비난한 적이 있다. 특히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흐루쇼프가 미사일을 뺀 것에 대해 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패배주의적으로 나온 것이라 공격했다. 마찬가지로 고르바초프의 행위도 서방을 이롭게 한다고 보기에 까는 것이라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